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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 임당동 고분군(林堂洞古墳群)

蔥叟 2008. 4. 17. 08:16

경산 임당동 고분군(林堂洞古墳群)

 

   임당동 구릉위에 있는 삼국시대 전기 무덤들로서 무덤의 형식은 널무넘(목관묘), 독무덤(옹관묘),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묘),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묘)을 비롯하여 다양하게 나타난다. 출토유물은 금·은제 각종 치레거리(장신구), 고리자루큰칼(환두대도)을 비롯한 철기류와 토기류가 발견되었다. 이러한 출토 유물 상황으로 보아 당시 이 지역 지배자의 무덤으로 볼 수 있다.

 

▲임당동 고분군(林堂洞古墳群)

 

   『삼국사기』에 ‘파사왕 23년 압독국왕이 신라에 항복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압독국은 임당동무덤들이 있는 압량면 근처로 추정되는데 이 무덤들을 통해 삼국시대 초기 소국(小國)의 관계를 볼 수 있다. 임당동 출토 유물과 무덤구조는 경주 초기 무덤의 유물과 구조에서 찾아볼 수 있고, 가야문화와도 비슷하여 서로간의 문화교류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유적이다.

 

▲임당동 고분군(林堂洞古墳群)

 

   4기(2,5,6,7호)의 거대한 원형 봉토분에서 모두 17기의 무덤이 조사되었는데, 횡구식 석실 1기와 옹관 2기를 제외한 무덤의 구조는 모두 주실(主室)과 부실(副室)로 되어있었다. 2호분은 두개의 봉분이 있는 쌍분(雙墳)인데, 그 구조는 2기의 무덤을 남북선상에서 함께 붙였으며, 축조순서는 남쪽에 있는 무덤이 먼저 만들어졌고 북쪽 무덤은 뒤에 남쪽 무덤에 붙여 만든 것이다. 이 남쪽의 남분(南墳)과 북쪽의 북분(北墳)의 구조는 모두 주실과 부실로 구성되어 있고, 남분의 주위에 원형(圓形)의 호석(護石)을 돌렸고, 여기에 반원형(半圓形)으로 북분의 호석을 붙였다.

 

▲임당동 고분군(林堂洞古墳群)

 

   5, 6, 7호분을 발굴한 결과, 석실묘 13기를 비롯 2기의 옹관묘(5호,7호)등 모두 15기의 무덤이 발견되었다. 석실묘 가운데 1기(5A)는 지상에 축조된 횡구식 석실분(橫口式 石室墳 : 앞트기식 돌방무덤)이고 다른 묘들은 모두 2호분과 같은 수혈식 석실분(竪穴式 石室墳 : 구덩식 돌방무덤)이다. 옹관묘 2기와 석곽묘 2기(5A,6A)를 제외한 무덤의 구조는 모두 주실과 부실으로 되어 있는데, 2기의 석실묘는 주실만 조성된 단실묘(單室墓)이다.

 

▲임당동 고분군(林堂洞古墳群)

 

   임당동고분의 대다수를 이루고 있는 수혈식 석실묘는 모두 청석암반을 편평하게 깎아낸 다음 다시 청석을 깨어 파내려가 주실과 부실을 만든 것이 독특하다. 이들의 무덤 주위에도 원형 또는 반원형으로 호석을 돌려놓았는데, 2호분처럼 무덤을 붙여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한 봉분 안에서 여러 기의 무덤이 조성된 것은 혈연집단묘적(血緣集團墓的)인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임당동 고분군(林堂洞古墳群)

 

   출토유물은 주실과 부실에서 출토되는 것들이 차이를 보이고 있다. 주실에서는 금동관(金銅冠)과 조익형 관식(鳥翼形冠飾), 금동관편(金銅冠片), 순금제이식(純金製耳飾), 금동제이식(金銅製耳飾), 금은제지환(金銀製指), 금제장식구, 곡옥, 금은제구슬, 유리구슬, 관옥, 은제요대(銀製腰帶), 금동제 신발, 금동제 호록(金銅製葫綠 :금동으로 만든 화살통 장식), 금동제 환두대도(金銅製 頭大刀), 철제대도(鐵製大刀), 철모, 삼지창(三枝槍), 시상대(屍床臺), 각종 토기, 골각 장식구, 비단조각, 인골 등이 출토되었다. 부실에서는 청동마탁(靑銅馬鐸), 금동제 및 철제 마구류, 철촉, 철도끼, 숫돌, 유개 삼두마 대부완(有蓋三頭馬臺附)을 비롯한 각종 토기류, 상어, 돼지, 사슴, 닭뼈, 생선뼈, 패각류, 인골(순장)들이 출토되었다.

 

▲임당동 고분군(林堂洞古墳群)

 

   이들 출토유물 가운데 주실의 유물은 피장자의 신분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장신구, 무기, 토기들이며 부실의 유물은 순장자를 포함하여 저승에 가서 사용할 각종 일상도구, 마구류, 음식, 그릇 등 당시의 사회, 문화, 경제, 기술, 사상들을 알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유물들이 약 2천여점이 발견되었다.

 

▲임당동 고분군(林堂洞古墳群)

 

   발굴조사를 통해 알게 된 무덤의 형식에는 암반을 수직으로 깎아내고 만든 수혈식 (竪穴式 : 구덩식) 석실과 암반 위에 냇돌로 쌓아 만든 횡구식(橫口式 : 앞트기식)석실, 독으로 만든 옹관(甕棺)등 다양했고, 출토된 유물로는 금동관과 관식을 비롯하여 금귀걸이, 반지 등 장신구류, 마구류, 여러 형태의 토기류 등 다양하고 많았다. 이들 유물은 대체로 신라의 양식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임당동 고분이 신라와 같은 관련성을 반영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무덤 속에서는 여러 사람의 인골이 함께 묻혀 있어 당시 순장(殉葬)의 장제(葬制)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 고분군도 조영동 고분과 같이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나오는 삼국시대 초기의 소국(小國) 압독국(押督國)과 긴밀한 관계가 있음을 고고학적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이곳에서 출토된 많은 귀중한 유물과 금동관은 이 고분의 주인공이 지배자의 신분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으며, 신라와 압독국과의 관계 즉, 신라가 압독국을 복속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고고학적 자료이다.

 

▲임당동 고분군(林堂洞古墳群)

 

   압독국은 경상북도 경산시 압량(押梁) 지역에 있던 삼국시대 초기 소국이다. 압량국(押梁國)이라고도 한다. 102년(파사이사금 23) 사로국(斯盧國:신라)에 투항하였다가, 146년(일성이사금 13) 10월에 다시 사로국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으나 곧 진압되어 주민들이 모두 사로국 남쪽으로 강제 사민(徙民)되었다.압독국은 사로국이 진한(辰韓)연맹체의 맹주로서 주변의 다른 나라들과 병존할 때에는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었으나, 사로국이 주변의 소국들을 병합시키며 세력을 확대해 나가는 과정에서 독립된 정치세력을 유지하지 못한 채 소멸되었다. 경산 압량 지역은 백제의 침입으로부터 경주를 보호하는 전략적 요충지로서, 신라 중고기(中古期)에 군사적 거점에 설치하는 주(州)가 설치되었다.

 

 

 

<2008.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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