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고분 순례 - 서울 석촌동 쌍돌무지무덤(雙積石塚)
일찍이 파괴된 고분 위에 흙이 덮이고 민가가 들어선 상부 구조는 알 수 없으나, 발굴 조사에서 드러난 적석 상태에 의하여 2기의 고분이 합쳐져 이루어진 쌍분(雙墳)으로 보인다. 내부구조는 남분과 북분이 서로 달라서 북분은 석축 내부가 점토로 채워진 백제식 돌무지무덤이지만 남분은 내부에 돌덧널을 가진 전형적인 고구려식 돌무지무덤이다. 제1호분의 상부는 파괴되어 구조를 알 수 없고 남아있는 하단부로 대강의 규모와 구조를 알 수 있을 뿐이다.
▲제1호분
동서 9.9m, 남북 8.9m 크기의 북분(北墳)과 동서 9.6m, 남북 9.8m 크기의 남분이 합쳐진 것인데 합침에 있어 남북분 사이가 3.7m 떨어지고 그 사이는 진흙으로 메워졌으며 남.북분 서쪽 기단부는 너비 3.2m의 적석단으로 이어졌다. 내부 구조는 남분에서만 확인되었는데 길이 20~30cm 크기의 포갠돌로 네 벽을 쌓고 바닥에 10cm 안팎의 포갠 돌 조각.자갈 등을 깐 석곽 4개가 있었다. 가장 큰 중앙의 석곽은 길이 약 2.5m 너비 약 2.3m이고 1호 소형 석곽은 길이 1.8m, 너비 1.3m이다. 그리고 평면 모양이 이 적석총과 거의 같은 것으로는 고구려의 적석총인 중국 길림성 환인현(桓仁縣) 고력묘자촌(高力墓子村) 제15호분, 평안북도 송암리 제45호분 등이 있다.
▲제1호분 내부
석촌동 제1호분은 1987년에 조사당시 남분(南憤)과 북분(北墳)이 이어진 왕릉급의 대형 쌍분임이 확인되었다. 그 쌍분 전통은 압록강 유역이 환인형 고력묘자촌에 보이는 이음식돌무지무덤과 연결되고 있어 백제 지배 세력이 고구려와 관계가 깊다는 또 하나의 증거를 보여준다. 북분이 먼저 만들어지고 이어서 남분이 축죄되었는데 남분은 북분에 덧붙여 만들어졌다.
▲제1호분 내부
제1호분은 부부합장묘로서 북분은 토착계 부인의 무덤이고 남분은 고구려계 남편의 무덤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먼저 죽은 부인의 무덤을 만들면서 내부는 부인의 출신지 전통방식의 널무덤계로 하고 외부는 나중에 고구려계 남편의 무덤과 쌍분을 만들 계획으로 돌무지무덤을 만들어 뒷날 축조한 남편의 고구려식 돌무지 무덤과 합친 것으로 보고있다. 축조시기는 3세기 중후반 무렵으로 추정하고 있다.
▲제1호분 남분
<2008.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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