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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전인용사터 출토 광명대(光明臺)

蔥叟 2007. 11. 29. 11:08

경주 전인용사터 출토 광명대(光明臺)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광명대란 촛대와는 달리, 초와 기름등잔을 병행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제작된 등촉기구(燈燭器具)이다. 중국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이 고려의 문물과 습속에 대해 기술한 고려도경(高麗圖經)에 의하면, “광명대는 등불과 촛불을 받치는 기구이며, 아래 발이 세 개 있다. 가운데 기둥이 있는데, 모양이 대나무 같이 마디마디로 이어진다. 위에 쟁반 하나가 있고 그 가운데에 작은 사발 하나가 놓여 있는데, 그 작은 사발 가운데에서 촛불을 밝힐 수 있다. 등불을 켜려면 구리 등잔으로 바꿔 기름을 담고 심지를 세워 작은 흰 돌로 눌러 놓고 초롱은 붉은 망사로 씌운다.”라고 되어 있다.

 

*광명대(光明臺, 통일신라시대)


   이러한 기록과 유사한 형태를 지닌 고려시대의 광명대는 원주 법천사지(法泉寺址)출토 무자명(戊子銘) 광명대(한독의약박물관 소장)등으로 현재 여러 점 남아 있으나, 통일신라의 유적에서 발굴조사를 통하여 층위와 출토상태가 분명하게 확인된 광명대로는 국내 최초의 것이다. 따라서 삼국시대이후 우리나라 금속공예의 발전과정을 이해하는 데 큰 의미를 지닌 유물로 높이 평가된다. 


   경주 전 인용사터 사역 내 서쪽 연못의 바닥에서 출토된 광명대는 청동으로 만든 것으로 높이 35cm이다. 등좌(燈座)는 세 방향으로 뻗은 짧은 동물 다리 위에 둥근 원반형 받침을 마련하였고, 원반의 중앙에서 곧게 뻗어 위로 오르는 대나무 마디 모양의 굵은 기둥(燈?)이 연결되어 있다. 기둥 위에는 가장자리가 살짝 들린 형태의 둥근 접시(承盤)가 올려져 있는데 주석땜질로 결합된 것이 특징이다.

   이와 같은 형태의 광명대는 비교적 고식에 속하는 것으로 특히, 대나무 마디를 형상화한 굵은 기둥에 정교한 나사산과 같은 장식이 표현되어 있는 것은 리움미술관 소장품(국보 제174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과 같은 형식계열로 파악되며 고려시대의 것과는 구분이 되는 통일신라 광명대의 양식상 특징으로 보인다.

 

 

 

<2007.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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