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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사천왕사터 출토 녹유사천왕상벽돌(綠釉四天王像塼)

蔥叟 2007. 9. 4. 08:48

경주 사천왕사터 출토 녹유사천왕상벽돌(綠釉四天王像塼)

<국립경주박물관특별전>

 

   사천왕사 목탑은 발굴 결과 석조와 전돌과 목조가 한데 어우러진 건축물로 밝혀졌다. 나아가 전돌로 쌓아올린 벽 사이사이에는 녹유사천왕상을 안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놀라운 대목은 사천왕상이 각 벽면마다 4구씩 안치됐음이 드러난 점이다. 이렇게 되면 사천왕사 서탑만 해도 모두 16구에 이르는 사천왕상을 조각한 셈이  된다. 이런 결과가 뜻밖인 것은 종래 불탑에서 사천왕상은 1구, 혹은 4구가 안치되는 것이 정상이기 때문이다.

    사천왕이란 원래 고대 인도 종교에서는 귀신들을 지배하는 왕이었으나  불교에 귀의한 다음에는 부처님과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이 되었다. 그들은 수미산 중턱 지점의 동서남북 네 방위를 지키는 방위신이기도 하다. 즉, 동쪽을 담당하는 지국천왕(持國天王), 서쪽의 광목천왕(廣目天王), 남쪽의 증장천왕(增長天王), 북쪽의 다문천왕(多聞天王. 곤사문천<昆沙門天>이라고도 함)이 그들이다.

    한국 불교에서는 사찰 경내로 들어서는 입구인 천왕문에서 흔히 목조각상  형태로 만날 수 있는데, 이들은 대체로 발밑에 깔려 고통스런 표정을 짓고 있는 마귀를 밟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강우방 이화여대 교수는 "종래 사천왕사지 출토 녹유사천왕상 파편들을 분류해 본 결과 모두 7구나 되어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사천왕사터 발굴현장을 살펴보고서야 그에 대한 의문과 비밀이 비로소 풀렸다"고 말했다.

     국립경주박물관과 국립중앙박물관에 각각 실물이 소장돼 있는 사천왕사지 출토 녹유사천왕상에 대해 문명대 동국대 교수를 비롯한 일부 미술사학자는 그것이  사천왕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팔부신중을 묘사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와 관련 강 교수는 "한국 불교미술사에서 팔부신중은 9세기가 되어야, 아무리 빨라도 8세기 말 이전에는 나올 수 없다"면서 "나아가 사천왕사지 녹유사천왕상  또한 악귀를 밟고 있다는 점에서 사천왕상이라는 사실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문명대 교수는 삼국유사 관련 기록을 중시해 사천왕사지 출토 녹유화상전(綠釉畵像塼. 녹색 유약을 바르고 그림을 그린 벽돌)이 묘사한 신상(神像)은 팔부신중이란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삼국유사에 수록된 '양지(良志)가 지팡이를 부리다'(良志使錫)란 이야기에 의하면 신라 선덕여왕 때 자취를 나타낸 양지라는 스님이 남긴 불교조각 중에 천왕사(天王寺) 탑 하단의 팔부신장(八部神將. 팔부신중)이 들어있어 현재까지 확인된 이른바 녹유사천왕상을 적어도 신라 당대에는 팔부신중으로 인식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고 지적된다.

 

 *사천왕상

 

*사천왕상

 

*사천왕상

 

*사천왕상

   

*사천왕상

 

*사천왕상

 

*사천왕상

 

*사천왕상

 

*사천왕상

 

*사천왕상

 

*사천왕상

 

*사천왕상

 

*사천왕상 넝쿨무늬

 

*사천왕상 넝쿨무늬

 

*사천왕상 넝쿨무늬

 

 

 

<2007. 8.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