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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의 후손마을 - 중국 난시 제갈팔괘촌 대경당

蔥叟 2017. 3. 30. 09:55

제갈량의 후손마을 - 중국 난시 제갈팔괘촌 대경당

 

제갈량의 후손들은 제갈승재 계열이 사람이 가장 많다. 그 중 하나의 원인은 이계열의 제갈 가족들은 선조 제갈량의 가르침인 "양상이 되지 못하면 양의가 되라"는 뜻을 받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성심껏 한의약업을 경영하고 양약을 만들어 장강 남북에 파니 당연히 재산을 모은 것이 적지 않았다. 현대 제갈촌의 대경당(중약전람관)은 제갈 승재 가족이 한약업에서 성취한 것을 집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명대 후기부터 제갈촌에서 약재업(藥材業)이 전문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했다. 주로 저장성 동부지역에서 생산된 약재를 가져다가 가공하거나 약으로 제조하여 파는 것이었다. 제갈량의 후손답게 제갈행군산(諸葛行軍散)이나 와룡단(龍丹)과 같이 선조의 명성을 얹기도 했다. 약재업은 계속 발달해서 청대에는 란시 인근에 300여개에 달하는 약재상이 있었다고 한다. 서양의 의학이 한창 쏟아져 들어온 후인 1947년 통계에도 제갈촌 출신들이 외지에서 200여개의 약재상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래서 휘주 사람은 돈()을 알고 제갈촌 사람들은 풀()을 안다고 했다.

    

선조가 하던 약재상이 후대에 이어지고, 동향인들이 좌우로 얽히면서 결속력이 단단한 상방(商邦)으로 발전했다. 18세기에는 타지에 같은 상호의 분점을 여는 연쇄점 형태까지 출현했다. 각지의 상인들도 란시와 제갈촌을 왕래하면서 란시 성내에 회관을 내기도 했다. 제갈촌에 들어와 거주하는 외지인들도 생겼다.

 

제갈팔괘촌 대경당

 

제갈팔괘촌 대경당

 

제갈팔괘촌 대경당

 

제갈팔괘촌 대경당

 

제갈팔괘촌 대경당

 

제갈팔괘촌 대경당

 

제갈팔괘촌 대경당

 

제갈팔괘촌 대경당

 

제갈팔괘촌 대경당

 

제갈팔괘촌 대경당

 

 

 

  <2017. 1.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