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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산문의 원향 -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 가릉빈가

蔥叟 2014. 12. 24. 07:47

사자산문의 원향 -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 가릉빈가

 

부처의 소리를 전하는 묘음을 내는 人頭鳥身의 새를 가릉빈가(범어 Kalavinka)라고 한다. 인두조신이란 새의 몸에 사람의 몸을 한 모습을 말한다. 가릉빈가는 히말라야의 설산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자태는 물론이고 소리 또한 아름다원 묘음조(妙音鳥), 미음조(美音鳥) 또는 옥조(玉鳥)라고 한다. 극락정토에 사는 새라고 극락조라고 부르기도 한다. 가릉빈가는 어떤 상황이나 장소를 미화하고 이상화하려는 방법으로 흔히 사용된다. 불교경전에 의하면 고대 중인도 코살라국 사위성 남쪽의 기원정사에서 부처님께 공양하는 날에 가릉빈가가 내려와 춤을 추었고, 묘음천(妙音天)이 가릉빈무(迦陵頻舞)라고 하는 무곡(舞曲)을 연주하였다고 한다. 이로부터 불전이나 승탑을 장식하는 소재로 가랑빈가가 자리잡게 되었다. 가릉빈가의 모습을 살펴보면 다리와 몸체와 날개는 새의 형상이고, 얼굴과 팔은 사람의 모습이다. 몸체는 깃털로 덮여있으며, 깃털이 달린 화관을 쓴 경우도 있고, 때에 따라 악기를 연주하기도 한다.

 

가릉빈가는 극락정토를 장엄하는 대표적인 극락조이다. 또한 불경에서 가릉빈가는 인두조신(人頭鳥身)에 용꼬리가 달린 상상의 새로 미묘한 소리를 낸다고 하여 미음조(美音鳥), 묘심조로도 불린다. 가릉빈가는 상상의 새로서 머리 형상은 미녀상이며, 몸은 새의 모습으로 날씬하고 아름다우며, 날개는 좌우로 펼치고 손은 사람의 손을, 발은 새의 다리를 가지고 있는 상상의 새였다. 항상 극락정토의 설산에서 서식하며 고운 묘음을 내면서 언제나 '약공무아상락아정(若空無我常樂我淨)'이라고 하며 항상 음악을 연주하고 춤을 춘다고 한다.

 

가릉빈가는 지금으로부터 약 2500여 년 전, 부처님이 왕사성 기원정사에서 사리불, 마하가섭 등 사부대중에게 설한 〈아미타경〉에 처음 등장한다. 부처님이 아미타 극락정토의 모습은 설하되, 그곳에는 흰 고니와 공작과 앵무와 사리조(舍利鳥)와 가릉빈가와 공명조(共命鳥, 한 몸뚱이에 두 개의 머리가 달린 새)와 같은 여러 새들이 밤낮으로 여섯 번에 걸쳐 아름답고 온화한 소리를 내는데, 이 새들은 모두 아미타불이 법음을 널리 펴기 위해 화현(化現)한 것이라 했다. 또한 그 국토의 중생들이 가릉빈가의 소리를 듣고 모두 부처님과 가르침을 생각하고, 스님들을 생각한다고 했다. 〈묘법연화경〉에는 부처님 음성을 가릉빈가 음성에 비유해 말했고, 후세 사람들은 가릉빈가를 미화하여 선조(仙鳥).호성조(好聲鳥).묘음조(妙音鳥).미음조(美音鳥).옥조(玉鳥)라고 불렀다.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의 사람들은 가릉빈가를 음악신 또는 음악의 창시자로 믿고 있는데, 인도 음악의 기원 전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인도 고대 전설에 의하면, 설산(雪山, 히말라야산)에 신기한 새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무시카(Musikar)라고 불리는 악기를 연주하는데, 일곱 개 구멍마다 각기 다른 소리가 나며, 계절에 따라 소리가 달라진다. 소리의 높낮이와 곡조의 조화가 미묘하여 환희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가릉빈가는 천년을 사는데, 수명을 다해 죽을 때가 되면 스스로 불을 피워 놓고 주위를 돌며 각종 악곡을 연주하며 열락의 춤을 춘다. 그러다 불 속에 뛰어 들어 타죽는다. 그러나 곧 따뜻한 재에서 한 개의 알이 생겨나 부화하여 과거의 환상적 생활을 계속하다가 또 불 속에 뛰어들어 타죽는다. 이렇게 하면서 생사의 순환을 계속한다. 환상적인 가릉빈가에 대한 전설은 대대로 전해져 지금도 인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 있다.

 

가릉빈가가 갖추고 있는 인두조신(人頭鳥身) 형태의 기원에 대해서는 몇 가지 견해가 있다. 인도 기원설, 그리스 기원설, 그리고 한대(漢代) 화상석에 보이는 우인(羽人. 날개가 있는 신선의 일종) 기원설이 그것이다. 그러나 가릉빈가의 형태에 관한 한 다원발생적인 측면보다는 ‘동서문화의 교류와 융합’이라는 관점에서 바라 볼 필요가 있다. 서기 전 4세기 경, 알렉산더 대왕의 동정(東征) 길을 따라 인도와 중앙아시아 지역에 파급된 그리스 문명은 현지 문명과 융합하여 제3의 문화를 탄생시켰다.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이 간다라 미술이고 간다라 불상이다. ‘동서문화의 교류와 융합’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 가릉빈가도 고대 인도신화 전설의 기초 위에, 그리스 로마 신화 속의 천사의 이미지를 차용하여 제3의 모습으로 변신했다.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난 가릉빈가는 서역과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전래되어 오늘날 사찰 곳곳에 자리잡게 된 것이다.

 

장식문양으로 가릉빈가가 등장하기 시작한 시기는 통일신라시대 이후이다. 통일신라시대 경우에는 부도나 와당에서 가릉빈가 문양을 많이 볼 수 있다.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 탑의 경우는 상대석 위에 있는 8면의 안상(眼象)을 가진 탑신괴임대 면에 주악상과 가릉빈가가 새겨져 있다. 양 날개를 활짝 펴고 서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금방 날아오를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전체적으로 도식적인 느낌이 강하나 그것이 오히려 부도의 분위기를 정숙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가릉빈가

 

▲가릉빈가

 

▲가릉빈가

 

▲가릉빈가

 

▲가릉빈가

 

▲가릉빈가

 

▲가릉빈가

 

▲가릉빈가

 

▲가릉빈가

 

▲가릉빈가

 

▲가릉빈가

 

 

 

<2014. 1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