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동점문 밖 돌당간
나주 동점문 밖 돌당간
羅州 東漸門 外 石幢竿은 애초에는 30단의 주통이었으며 높이는 60자(181.8m)였음을 알 수 있는데, 현존하는 당간두식(幢竿頭飾)의 예는 나주동문외석당간과 담양읍내리석당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전자는 팔각의 보개(寶蓋)와 보주(寶珠) 장식을 남기고 있으며, 후자는 금속제의 보륜(寶輪)이 이중으로 장식되고 풍경(風磬) 장식을 늘어뜨리고 있는데 현재 두 개가 남아 있다. 정상에는 삼지창(三枝槍)과 같은 철침(鐵針)이 솟아 있어 피뢰침의 인상을 주고 있는데, 한편, 돌·구리·철제의 당간 외 목제당간에 대한 자료가 남아 있어 주목을 끈다. 보통 당간의 아랫부분에는 육중한 당간을 받치기 위하여 연화문을 조각한 받침돌을 놓거나 기단형식의 대(臺)로 받치고 있다. 또한, 당간을 바로 세우기 위하여 좌우 양쪽에 지주로써 당간을 지탱하여 주고 있기도 하는데, 이 지주의 크기가 바로 당간의 크기를 좌우하게 되는 것이다.
나주 동점문 밖에 있는 석당간은 사찰과 관련이 없다. 나주목 고적조(古蹟條)의 기록에 보면 "처음에 나주에 주(州)를 설치할 때 나주지형이 배 형국인 까닭에 그 안정을 빌기 위해 동문 밖에는 석장(石墻)을, 안에는 목장(木墻)을 세웠다."라는 기록이 있다. 1872년에 그려진 나주목 지도에는 나주읍성 동점문 안과 밖에 목장과 석장이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까지도 있었다고 추정이 된다. 목장이 없어진 시기는 알려지지 않으나 1958년에 전봇대를 이용하여 주민들이 목장을 복원한 것을 동점문 복원사업을 하면서 동점문 안으로 옮겨 세운 것이라고 한다. 이곳 나주 석당간이 원래 세워진 곳은 영산강 침수지역으로, 지반을 다지기 위해 기단부를 3층으로 조성하고 그 위에 화강암으로 양 지주와 당간을 세운 것이다. 주민들은 "장사 주렁 막대기", "진대"라 하여 "힘 쎈 장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와 "긴 막대"라는 뜻으로 불러왔으며, 최근까지도 "진대제"라고 하여 차를 새로 사거나 소원이 있을 때 기원제를 지냈다고 한다. 참 그러고 보면 그 세월이라는 시간도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우리는 너무나 빨리 잊으려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돌당간
▲돌당간
▲돌당간
▲돌당간
▲돌당간
<2014. 11. 16>